그림책이지만 파업에 대해 명확하고 적절하게 묘사

<양들은 지금 파업중> 장 프랑수아 뒤몽 글,그림/봄봄

이정향 | 기사입력 2011/02/28 [12:05]

그림책이지만 파업에 대해 명확하고 적절하게 묘사

<양들은 지금 파업중> 장 프랑수아 뒤몽 글,그림/봄봄

이정향 | 입력 : 2011/02/28 [12:05]
▲ <양들은 지금 파업중> 장 프랑수아 뒤몽 글,그림/봄봄  © 수원시민신문
 어린이에게 파업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어른조차 파업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고 하는 사람보다 그저 언론의 프레임안에서 언론이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언론이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보여주느냐에 따라 판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은 어렸을 때부터 그러한 눈을 갖도록 도와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털이 복슬복슬한 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즉 양을 키우는 목적이 무엇일까. '털을 얻기 위해서'라는 뻔한 답을 들으려고 이 질문을 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양들은 누구를 위해서 자신들의 털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회의를 갖기 시작하면서 파업이 시작된다.여기서는 단지 동물로 치환되었을 뿐 사람의 일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파업을 한다. 그리고 처음엔 어르고 달래며 협상을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무력을 사용한다. 이게 바로 양치기 개 라프의 모습이다. 양들이 몰려오자 개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은 어떤 계층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나중에는 이웃 농장 개들을 모아 놓고 하는 이야기는 조금 더 직설적이다.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양을 진압해야 하는 개.

 
 그렇다면 제3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농장의 동물들은 각양각색으로 반응한다. 양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원래 양은 털을 깎기 위해 태어났으니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반응도 있다. 이것 또한 파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조금 불편해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코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파업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기도 한다. 무력시위를 하기로 한 양들과 개가 충돌하고 거기다가 다른 동물들까지 개편과 양편으로 갈라져 급기야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그 와중에 무조건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인물도 있다. 결국 서로 윈윈하는 타협을 하고 난 후 농장은 평화를 되찾았다.

 
 짧은 이야기 속에 파업하는 당사자와 파업을 진정시키려는 고용주, 그리고 주변 인물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이야기한다. 양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좋은 해결책이 떠올랐다. 무조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전혀 이해못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제3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당사자들끼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게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몇 년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팽팽하게 맞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것은 더욱 안타깝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양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양들이 아니라 주변 동물들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당사자들끼리는 서로의 명분과 자존심 때문에 양보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이럴 때 주변에서 이성적으로 서로 납득할만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원만한 타협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책에서처럼 그렇게 타협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파업에 대해 이토록 명확하고 적절하게 묘사하는 책을 못 보았다. 이러쿵저러쿵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다. 게다가 앞뒤 속표지에 그림이 없고 '화가도 파업중'이라는 글귀로 재미까지 더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마뜩찮은 부모도 분명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아이는 절대 양의 입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길 때 얘기다.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아니, 농장주의 입장이더라도 그들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본 경우와 그렇지 않았을 때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아이가 양이 되든 농장주가 되든, 혹은 다른 동물이 되든 생각해 볼거리가 많은 책이다. 문득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이런 책을 쓰려고 생각한 작가가 있을까 궁금하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닐 것이라는 자괴감이 동시에 든다.
 
* 이 글을 쓴 이정향 님은 <동화읽는어른모임>인 수원 ‘해님달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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