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암 역학조사,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더 나아갑시다[자료]반도체노동자 10년간 추적 역학조사 결과 혈액암 발생 및 사망 위험 높음을 확인2019년 5월 22일, 안전보건공단이 10년에 걸친 역학조사에서 ‘반도체 작업 환경이 혈액암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11년 넘도록 피해자들이 말해왔던 사실을 확인한 셈입니다. 쉽지 않았을 연구를 수행한 분들의 노고도 기억해야겠습니다.
연구 내용에 아쉬움도 있습니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못한 점과, 작업환경과 화학물질에 대한 자료의 한계로 암의 원인을 좁혀가지 못한 점입니다. 성급한 결론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2011년 이후 혈액암의 감소가 작업환경 개선의 결과라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판단할 근거는 부족합니다. 암 위험이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이전되진 않았을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위암, 유방암, 갑상선암이 높게나온 것도 단지 건강진단 기회가 많아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야간교대근무나 방사선 노출의 영향 때문인지도 짚어보아야 합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겼습니다. 첫째, 정부는 직업성 암의 산재인정 문턱을 더욱 낮추어야 합니다. 정부기관이 10년을 연구해도 직업성 암의 뚜렷한 원인을 찾기 어려웠으니 산재 노동자가 입증하기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둘째, 하청·협력업체 등 고위험군을 포함하고 작업환경과 화학물질 정보를 충실히 확보하여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야 합니다. 셋째, 이런 연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작업환경과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들을 책임있게 만들고 투명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넷째, 반도체 노동자 건강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작업환경 관리 방법과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의 작업환경측정 방식이나 노출기준으로는 노동자 건강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 혈액암은 가장 많이 제보받고 가장 많이 산재를 신청했던 질병입니다. ※ 반올림이 제보받은 반도체 백혈병 57명(사망 34명 포함), 림프종 29명(사망 5명 포함) ○ 그러나 오랫동안 근로복지공단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고, 삼성 등 기업들도 작업환경과의 연관성을 완강히 부인해왔습니다. ○ 피해자들은 과도한 입증부담 완화, 신속한 산재인정, 원인 규명과 예방대책을 요구하며 오랜 세월 힘겹게 투쟁해왔습니다. ※ 최초 피해자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황유미님 유족 산재 인정까지 7년 2개월 소요 ○ 그 결과 여러 피해자들이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받고, 2018년에는 고용노동부가 혈액암 등 8개 질병에 대한 입증부담 완화방침을 세웠습니다. ※ 고용노동부 2018년 8월 7일 보도자료; “기존에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사례와 동일 또는 유사공정 종사자에서 발생한 8개 질환은 업무관련성 판단과정을 간소화하여 노동자의 과중한 입증부담을 덜겠다”(백혈병, 다발성경화증, 재생불량성빈혈, 난소암, 뇌종양, 악성림프종, 유방암, 폐암) ○ 길이 없던 곳에 길을 만들어 온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이었습니다. 이번 역학조사 결과는 이런 노력의 정당성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〇 2011년 이후의 반도체 공장은 더 안전해졌는가? - 비호지킨림프종과 백혈병 대부분이 2010년 이전 입사자에서 발생했습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하여 ‘공정자동화, 생산제품, 취급원부자재 변화 등 작업환경의 영향이 변화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속단하기에 앞서, 과거와 현재 작업환경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인 자료를 검토해야 합니다. 또한 아래와 같이 합리적으로 추정되는 지점들도 검토해야 합니다.
〇 위암, 유방암, 갑상선암의 위험 증가는 단지 건강진단 기회 증가 때문인가? - 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에서 위암과 유방암 사망 위험이 증가한 것은 건강진단의 조기 발견 효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야간교대근무 등 작업환경의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 갑상선암도 방사선 노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에서, 반도체 공장 환경의 영향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〇 이번에도 어떤 질환들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증가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이런 결과가 마치 해당 질환의 위험이 전혀 없다는 식으로 왜곡되거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신청 기각 사유로 악용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 2008년 반도체 역학조사에서 백혈병 증가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고통받아왔던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
〇 이번 역학조사는 협력업체를 포함하지 못하였습니다. - 반도체 공장의 위험 작업들은 상당수가 사내외 하청· 협력업체로 외주화되었습니다. - 위험하던 수동 설비들이 자동화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설비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〇 이번 역학조사는 1998년 전의 입사자를 포함하지 못하였습니다. - 그 이전의 작업환경이 지금보다 더 위험하였으리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합니다. 〇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에 대한 자료의 한계가 큽니다. - 이 연구에서 조사한 암 발생과 사망은 1998년부터 2015년/2016년까지인데, 작업환경과 사용화학물질은 각각 2013년 이후와 최근 2년 이내의 자료를 사용하였습니다. - 연구진이 과거 자료를 일부러 수집하지 않았을 가능성보다는, 기업들이 과거 자료를 보관하지 않았거나 제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 취합된 2,014개 제품의 물질안전보건자료 중 40%나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정보의 질도 낮았습니다.
〇 정부는 직업성 암의 산재인정 문턱을 더욱 낮추어야 합니다. - 정부기관이 10년을 연구해도 직업성 암의 뚜렷한 원인을 찾기 어려웠으니 산재 노동자가 입증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 2018년 8월 고용노동부의 입증부담 완화 정책 도입 이전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직업병 피해자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평균 605일(최장 3년 10개월), 법원을 통해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평균 1,405일(최장 7년 2개월) 소요됨. - 암이나 희귀질환 등 입증이 어려운 질환들의 입증부담 완화 정책을 확대하여 재해 노동자의 권리를 적극 보장하도록 합시다. 〇 협력업체 등 고위험군을 포함하고 작업환경과 화학물질 정보를 충실히 확보하여 원인을 좁혀가는 연구를 지속해야 합니다. 〇 기업은 작업환경과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생산과 보관, 제공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 사용물질이나 작업환경 모니터링 정보가 부실하면 아무리 오래 연구를 해도 질병의 위험요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노동자들의 담당 업무와 공정에 대한 정보가 내실있게 제공되어야 고위험군을 좁혀나갈 수 있습니다. - 기업은 화학물질과 작업환경에 대한 정보를 잘 만들고 보관하고 공익적 사용을 위하여 투명하게 제공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 안전보건정보에 ‘영업비밀’이 남용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법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〇 반도체 노동자 건강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작업환경 관리 방법과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 발암물질 노출수준은 노출기준보다 훨씬 낮았는데 암 위험은 높게 나타났습니다. 현재의 작업환경측정 방식이나 노출기준으로는 노동자 건강을 보호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간헐적 고농도 노출도 빈번하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반도체 산업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작업환경 관리 방법과 기준이 필요합니다. <저작권자 ⓒ 수원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반올림 관련기사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