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의 희망 4월호 소식지 "여러분이 김복동의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김복동의 '희망'입니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김철민 기자 | 기사입력 2020/05/06 [17:00]

김복동의 희망 4월호 소식지 "여러분이 김복동의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김복동의 '희망'입니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김철민 기자 | 입력 : 2020/05/06 [17:00]
여러분이 김복동의 '희망'입니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 
 
비영리민간단체 <김복동의 희망>은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이 우리 사회에 '횃불'이 되고자 하는 유지를 받들어 알찬 한 해를 보내려고 합니다. 그 활동들을 매월 소식으로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아래와 같이 4월의 활동 소식을 엮어서 보내드립니다. 
 

1. 제2회 김복동장학금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4월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뜰에서 제2회 김복동장학금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코로나19'로 평화로에서 열릴 예정이던 수여식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뜰에서 진행했습니다. 비록 마스크는 끼었지만 봄의 정취를 만끽하며 열 명의 장학생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했습니다. 8명의 장학생과 부모님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김복동의희망>이 장학생을 뽑을 때 가장 힘든 일은 신청자를 다 뽑지 못한다는 그 사실입니다. 심사위원장 윤미향 전 대표가 말한 것처럼 <김복동의희망>은 장학생 신청자들의 신청서류를 몇 번씩이나 함께 읽고 울고 웃으며 참으로 어렵게 열 명을 선정했습니다. 
 
그렇게 선정된, 한국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 평화, 통일, 인권을 위해 힘쓰는 활동가 부모님들의 자녀들을 오늘 만났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혹은 부모님이 대신 참석해 기쁨을 나눴습니다. 
 
장상욱 공동대표가 증서를 전해주고, 김서경 운영위원이 뱃지를 달아주고, 권미경 운영위원이 꽃다발을 안기며 한사람 한사람 자랑스러운 장학생들을 격려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뉴질랜드한인여성회와 작가님을 비롯해 김복동의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의 뜻이 모여 이루어졌습니다. 
 
김복동장학생들은 ‘내가 이걸 받아도 될까’ 자문하기도 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김복동할머니의 뜻을 따라 활동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활동가 부모님들을 둔 장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한 때는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도 했지만 이제 모두가 부모님을 존경하고 이해한다고 고백합니다. 
 
김복동할머니의 뜻을 함께 펼쳐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시민활동가분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밀알이 된 김복동장학생들 모두가 자랑스럽고 또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대구에 있어서, 그리고 부모님의 입원으로 참석하지 못한 두 장학생에게도 장학증서와 장학금이 전달됐습니다. 
 
“나를 따라,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김복동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김복동장학금 수상자들의 소감]
 
권영한 학생 
"장학금을 신청하면서 쓰면서도 많이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뭐랄까.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고, 뭔가 더 저보다 많이 희생하고 희망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저에게 주신다니까 깊이 생각하고 책임감있게 행동하겠습니다." 
 
김다빈 학생 
"장학금 처음 쓰기시작할때 어머니가 제주도분이어서 연락드렸는데, 우리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이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더 어렵습니다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말씀 새기고 저보다 저 어렵고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이 장학금 쓰고 더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권지은 전농 사무국장 (김민선 학생의 엄마) 
"저희 딸이 독일에서 공부하는데, 사실 방학이어서 나와서 이 상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놈의 코로나19때문에 나오면 2주동안 격리된다고 해서 상을 못받았습니다. 딸이 글을 쓰면서 자기 안될 것 같다, 열심히 안살아서. 그래서 상 받겠끔 열심히 살지 그랬냐고 했습니다. 장학금이 됐다고 해서 너무 애가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지금 이 돈을 뭘 쓸까 독일에 사재기가 일어나서, 생필품을 사서 보내야 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변 분과 나눠쓰고 하겠습니다. 딸이 격리 한 달이 되어서 힘든데, 장학금이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어렵게 공부하는데, 한국 돌아와서 살아갈 힘이 될 수있을 것같아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수민 학생 
"이걸 받아도 되나 어떨떨합니다. 이거 받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글 쓰고 세상에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서 글을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솔 학생 
"장학금 잘 받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좋은 병원 취직해서 힘든 분들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인아 학생 
"장학금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활동해준 엄마에게 고맙고, 이 장학금 좋은 곳에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정혜민 학생의 엄마) 
"저희 딸이 생각보다 모범생이라서, 실시간 수업이라 빠질 수 없다고 그해서 저같으면 빠졌을 텐데, 절 안닮은 것 같아요. 사실 장학금 신청할 수있는 곳 많이 찾아봤다. 우리집은 반대였습니다. 우리 딸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줘야하지 않을까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보다 많이 어렵단다 얘야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장학금 신청해서 받게 됐습니다. 우리 딸은 자라면서 특히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요즘 N번방때문에 잠을 못이루면서 분기탱천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 장학금, 김복동 할머니의 장학금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마 때문에 참 피곤했는데, 이번 기회에 제가 조금 면이 섰습니다. 주신 장학금 아주 귀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단비 학생 
"장학금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장학금 주신거 잊지않고 사회에 환원하고 저보다 더 힘든 분들을 위해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2020년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김복동의희망> 공동대표 이.취임식을 열었습니다.
 
4월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교육관에서 2020년도 임시총회를 개최했습니다. 안건은 <김복동의희망> 공동대표 선출와 운영위원 선출의 건이었습니다.  
 
<김복동의희망> 정관에 따라, 운영위원회를 소집했습니다. 장상욱 공동대표의 사회로 지난 3월 25일자로 사직한 윤미향 전 공동대표의 빈 자리를 손영미 운영위원이 맡기로 결의했습니다. 또한, 윤미향 전 공동대표를 운영위원으로 새로 맞이했습니다. 
 
이어 열린 임시총회에서는 참석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손영미 공동대표, 윤미향 운영위원을 추대했습니다. 그리고 윤미향 전 공동대표 이임식과 손영미 신임 공동대표 취임식을 열었습니다.  
윤미향 운영위원은 이임사를 통해, ‘나를 더 이용해달라!’ 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정신을 가장 오래도록 지켜보고 함께 손잡고 왔던 그녀는 앞으로 국회에서 더 바쁜 활동을 통해 할머니의 뜻을 펼쳐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온라인으로 함께한 양징자 운영위원은 그동안 윤미향 위원과 함께해 온 활동을 반추하며 응원의 편지를 전해왔습니다. 윤미향 대표의 말 한마디에 두 번 생각 않고 일본박물관건립후원회장을 맡고, 긴 세월 동지로 일해 온 두 사람의 찐우정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달려온 한줄기 역사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역시 박수를 보내온 방청자 선생님도 할머니의 뜻을 실현시킬 힘센 발걸음을 진척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전시성폭력이 없는, 분단을 깨트리는 활동을 응원하며 일본사회를 바꾸는 활동을 일본에서 계속해 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윤미향 위원의 그동안의 활동에 감사와 사랑을 담아 <김복동의희망>은 김서경 운영위원이 만든 멋진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권미경 운영위원은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역시 김복동 할머니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해 온 손영미 신임 공동대표는 이제 더 열혈활동으로 <김복동의희망> 가장 앞줄을 지켜나갈 예정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며칠을 울었다고 고백한 손영미 대표는 앞으로 운영위원들과 함께 의논하고 노력하며 열심히 공동대표직을 해 나갈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짝짝짝, 박수!!! 
 
총회와 이취임식에 함께하지 못한 <김복동의희망> 회원님들,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든 분들, 두 사람의 앞으로의 활동을 격려해주시고 <김복동의희망>이 나아가는 걸음에도 계속해서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윤미향 전 공동대표 이임사] 
 
김복동의희망을 시작할 때 오늘이면 통일이 된다고 누가 이야기했습니다. 
김복동의 희망은 5년만 달려보자. 5년 후면 통일이 되면 조선학교 문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역사청산 문제 등이 한꺼번에 해결되니까, 힘차게 달려서 조선학교 아이들 차별, 재일동포 사회문제 우리 힘으로 해결하면되지않나 각오를 새기고 김복동의희망을 시작한 기억이 납니다. 
 
제가 김복동 할머니의 정신을 오랫동안 지켜봐왔고, 함께한 세월, 대표를 맡아서 지금까지 왔는데, 갑자기 회기 중간에 그만 둘 것이라고 생각못했어요. 또 중요한 역할들을 할 수있지않겠는가 생각으로 이번에 21대 국회 비례후보로 가게 되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의 유지를 공동대표로 받드는 일을 다른 곳으로 이어간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현장이 더 넓어지고 더 바빠질 것이라고 봅니다. 공동대표를 그만 두어서 갑자기 어수선하게 만들어서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달라요. 손영미 신임 공동대표님이 그 누구보다 할머니를 옆에서 잘 모셨고, 뜻이 뭔지 다 알고, 지난 김복동장학금 기간 동안 회계, 사무 일체를 양노자 사무처장과 함께 여러 사무처 활동가들과 함께 해와서, 이렇게 사람이 교체되는 것이 다른 회원들에게 부담주지않을 것같아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이용해주세요. 운영위원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영위원되어서도 역할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재일조선학교와 재일조선사회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일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복동의희망 송사] 
 
‘김복동의 희망’은 윤미향 대표를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윤미향 대표가 현장에서의 30년을 바탕으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수많은 언론 보도에서 보듯,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실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제 ‘김복동의 희망’이 윤미향 대표를 떠나보낼 시간이 되었습니다. 
 
윤미향의 30년은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들과 함께한 세월이었습니다. 
윤미향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이 시작된 그때부터 아스팔트 인생을 살았습니다. 단 한 번도 할머니들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윤미향은 김학순의 눈이었고 강덕경의 입이었습니다. 김순덕의 손이고 박두리의 귀였으며 안점순의 발이었습니다. 김상희의 울부짖음, 황금주의 호통, 이금순의 눈물, 이순덕의 미소가 윤미향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복동의 희망이었습니다. 
 
윤미향의 30년은 차별을 받아온 재일동포의 손을 맞잡은 나날이었습니다. 
윤미향은 재일동포의 삶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일본 정부의 차별받는 재일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작지만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고자 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내민 손을 재일동포들이 잡을 수 있도록 이어주었습니다.  
 
윤미향의 30년은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뜨겁게 실천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윤미향은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 안아 살아왔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피해자들을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분단선을 끊어내고자 했던 문익환 목사의 삶을 존경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외치는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윤미향은 길원옥 할머니를 고향, 평양으로 보내야 한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윤미향의 30년은 사랑이었습니다. 
윤미향의 30년은 평화였습니다. 
윤미향의 30년은 희망이었습니다. 
 
윤미향은 차별없는 세상, 평화의 세상을 만들자는 ‘김복동 정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윤미향은 김복동의 희망과 길원옥의 평화를 실현하는 소중한 횃불이 될 것입니다. 
윤미향은 ‘김복동의 희망’ 한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김복동의 희망’은 윤미향 대표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합니다. 
‘김복동의 희망’은 윤미향 대표의 새길을 냉철하게 지켜보겠습니다. 
‘김복동의 희망’은 윤미향 대표가 김복동의 희망, 길원옥의 평화가 봄날 파릇한 싹을 틔우는 흙과 물처럼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주실 것을 희망합니다. 
 
‘김복동의 희망’은 윤미향 대표님과 함께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2020년 3월 25일 ‘김복동의 희망’ 
 

[양징자 운영위원의 글]
 
누가 나한테 물었다.
“절친이 누구세요?”
난 늘 하던 대답을 한다.
“나 친구 없어요.”
 
학창시절 친구들과는 아예 연을 끊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편이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바로 전화하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특별한 용건 없이 연락하고 만나는 그런 한 사람이 딱히 없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혼자 속삭인다.
 
“윤미향”
 
나는 늘 윤미향의 절친이고 싶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멀리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달려 갈 수도 없고, 힘들 때 그냥 안아주지도 못하는데 무슨 그런 절친이 있을까. 무엇보다 절친이란 게 나만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도 그렇게 생각해야지. 그래서 대놓고 말할 수가 없다. 그냥 나 혼자의 바램일 뿐.
 
그렇지만 누군가가 존경하는 운동가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다.
 
“윤미향”
 
그 통찰력과 판단력, 실천력 게다가 인품까지. 나보다 7살이나 어린 윤미향의 판단, 윤미향의 실천을 따라온 20년이었다.
 
“언니, 우리 박물관 지으려고 하는데, 언니가 해외건설위원장 해 줘야겠어”
그 전화를 받은 것이 2003년말. 윤미향을 처음 본 건 1992년이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함께 하게 된 것은 이 전화를 받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설에 해외건설위원장으로서 참여하게 된 이후부터였다.
 
그 후에 있던 일들이 수없이 떠오른다. 그 일들을 다 쓸 수도 없고 쓸 필요도 없겠지만, 가장 인상 깊이 떠오르는 일을 하나만 적어 본다.
 
2015년초쯤이었을 것이다. 와다 하루키가 윤미향을 초청해서 일본에서 함께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만들자고 제안해 왔다. 우리는 망설였다. 한일 정부간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와다 하루키는 일본정부 쪽에 인맥이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 국민기금 때 사연들을 생각한다면 윤미향에게는 당연히 부담일 수 있다. 우리는 판단 못한 채 이 제안을 윤미향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윤미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갈게. 와다 하루키든 누구든 그것이 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야지. 해결을 위해서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뭐든지 할게.”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해 말 그대로 한몸 바쳐온 이 여성의 각오와 헌신을, 와다 하루키는, 그리고 일본정부는 결국 배신했다. 2015한일합의 직후인 2016년 1월 4일, 정대협 사무실을 찾았을 때 우린 서로를 부등켜안고 엉엉 울었다.
 
언젠가는 보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하는 기회가 종종 있었으니까.
 
처음에 그런 가능성을 상상했을 때에는 너무 무서웠다. 당시는 윤미향 없이 일본에서 운동해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같이 그만둬야지 했다.
 
다음에 그런 가능성이 시사됐을 때에는 너무 싫었다. 왜 윤미향 없이 이 운동을 계속해야 하나 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떠나야지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윤미향은 말했다.
“나는 평생 재야 활동가로 있고 싶어”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또 아쉽고 안타깝고 죄책감마저 느꼈다. 더 큰 물에서 활동해야 할 사람인데, 더 이상 붙잡으면 안 되겠다고 반성했다.
 
그래서 이번 결정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진심으로, 무조건 지지 응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붙잡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수 있겠지.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꼭 해 낼거다. 자신이 가진 힘과 자질에 맞는 곳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미향이 없어도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정의연 식구들 보면 믿음직하고, 김복동의희망 친구들 보면 따뜻하다.
 
윤미향이 없어도 할머니들 뜻을 함께 이어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외롭지도, 불안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윤미향은 다 준비를 해 놓았구나. 남을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게, 평생 이 마당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하면서, 한편에서는 자신이 떠나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운동을 계승할 수 있게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다 준비를 해 놓고 가는구나.
 
역시 대단하다.
 
그런데 불만도 있다. 이 기회에 말해 놔야지.
정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일본에서, 미국에서, 아프리카에서 누가 힘들다고 하면 꼭 구해 주려고 애쓴다. 마치 지구와 전 인류를 구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러지 마. 미향아. 네가 가진 힘은 알겠지만 그래도 전 인류를 구할 수는 없다.
책임감이 너무 강한 게 탈이다. 사실은 나도 책임감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봐도 너무했다.
 
이제 우리를 걱정하지 마. 책임감도 느끼지 마, 걱정하지 말고 도움만 받아 줬으면 좋겠어. 언젠가 한가하게 여행 가자. 절친으로서.
 
아, 그리고 올해 초에 얘기했지? 한일 여성의원모임 만들자고. 이런 식으로 약속을 지켜 주려고 하네. 약속 잘 지켜 주는 것. 그건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안다. 윤미향이 어디에 자리를 옮겨도 할머니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것을. 그러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윤미향 화이팅!
 
[방청자 운영위원의 글]
 
윤미향대표에게 보내는 말
 
윤미향대표, 30년간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활약의 장소를 국회에 옮긴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드디어 이날이 왔다고 감개 깊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놀라지 않습니다.
 
대표가 정의연을 떠나 힘세게 발걸음을 진척시키는 것은 할머니들의 소원이기도 하겠습니다.
이번에 윤미향대표가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의 현장에 이미 뒤에 이어지는, 동지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미향 대표를 박수로 보내는 것과 동시에, 뒤를 맡겨진 멋진 후배 동지들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는 이미 일본정부에 의한 피해자에의 사죄와 배상의 실현것만으로 끈내는 문제가 아닙니다.피해자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전시성폭력이 없는 세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이며,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의 실현입니다.
 
일상생활속에 숨고 있는 여성차별이나 폭력,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물건처럼 취급하고, 소비하는 문화나 폭력이 만연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을 바꾸어 가는 힘센 발걸음을, 앞으로 국회라는 자리에서 많은 여성들과 함께 힘세게 진척시켜 주세요.
 
학생 시절의 군사독재와의 투쟁이나, 피해자와 함께 걸었던 시기를 통해서, 사회의 민주주의나 저변에 사는 사람들의 괴로움, 분단 사회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 온 윤미향대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필 달성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 저럼.
 
그리고 그 따뜻한 감수성으로 사람들에게 바싹 달라붙고, 아픔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그 정의를 구하는 강한 의사로 분명 고난을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윤미향대표의 결단을 듣고, 나도 일본 땅에서 결과를 내놓을 수 있게, 일본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힘이 되기 위해서, 계속 열심이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손영미 공동대표 취임사]
 
저는 윤미향 대표를 보낼 때가 됐다고 상상을 못했어요. 언젠가 제가 먼저 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충격받았어요. 
 
너무 기뻐할 일인데 김복동 할머니 방에 올라가서 3일을 울었어요. 어떻해요 보내는거 맞죠하고 울고, 잘하도록 기도하자고 울고. 그래도 할머니는 씩~ 웃고 계세요. 기쁜 맘으로 웃고 계신 거였어요. 이렇게 기뻐하는 일이면 우리도 기뻐하고 가셔서 더 좋은 일을 하시면 김복동의 희망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미향 대표님, 마지막으로 대표님,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우리 두 분 공동대표님과 운영위원님들과 함께 노력하면서 같이 의논하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3. 김복동 할머니 생신을 맞아 망향의동산을 참배했습니다.
 
4월 4일은 이순덕 할머니의 기일이고 4월 5일(음 3월 13일)은 김복동할머니의 생신입니다. 
 
4월 4일 아침 일찍 김복동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음식들 한상 차림해서 생신상 나누고, 천안 망향의 동산을 찾아 두 분 할머니께 꽃다발 놓아드렸습니다. 
 
이순덕 할머니 먼저 가시던 날 김복동 할머니가 ‘순덕이 형, 가서 잘 있어라. 내 곧 따라갈게’ 하며 눈물 지으셨는데 이제 쯤 두분 만나셔서 두런두런 옛 이야기 나누며 평안히 잘 지내고 계시겠죠? 
 
이순덕 할머니의 딸 가족분들이 준비해 주신 케이크도 놓아 드리고, 그 앞에 한참을 앉아 담소 나누던 우리 모습 바라보며 흐뭇해도 하셨겠죠? 
 
김복동 할머니의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수상을 축하하듯 목련이랑 개나리랑 만발한 따뜻한 봄날씨 속에 할머니들과의 추억도 꽃피웠습니다. 손영미 신임 공동대표는 앞으로 <김복동의희망>을 위해 더욱 열심히 달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가신 이ㅇㅇ 할머니께도 인사하고 김학순 할머니, 송신도 할머니, 김은례 할머니, 장점돌 할머니, 김연희 할머니, 강순애 할머니… 그렇게 할머니들 한분 한분과도 인사나누고 왔습니다. 
 

4. 재일 조선학교 김복동 장학생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지난 3월에 이어 4월에도 재일 조선학교를 졸업하는 김복동장학생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의 정신으로 학업을 마치고 보다 멋진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김복동의희망>을 울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밝고 씩씩한 나라의 기둥이 되길 희망합니다. 
 
++++ 
 
저는 지난 2019년 6월에 새로 김복동장학생으로 선출되고 할머님의 각별한 사랑과 뜨거운 믿음을 받아안아 교또조선중고급학교에서 배우던 황애향입니다.  
 
저는 이번 3월 교또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하게 되였다는 보고와 김복동 할머님께서 배풀어주신 사랑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려고 이 편지를 씁니다. 
 
제가 지난 1년간 고급부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학창생활이 보람있고 충실한 1년이 된 것은 바로 다름아닌 받아안은 이 사랑과 믿음 덕뿐입니다. 장학생으로 선출된 것과 길원옥 할머님과의 만남이 고급부 1.2학년 시기 막연하게 만 지내던 저의 생활을 일변시켜주셨던 것입니다.  
 
이 1년간 저는 어릴 때 공부를 제대로 못하신 할머니 몫까지 배우느라 학습 등에 열심히 나서 많은 것을 배우려고 애썼으며, 배움의 중요성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또 위원 활동에도 어느 때보다도 보람을 느끼게 되었고, 남을 위하고 남을 위한 행동을 할 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1년 늦게 장학생으로 되였으니, 장학생으로서 융리하게 김복동 할머니를 직접 못뵈였습니다. 그러나 김복동 할머님, 길원옥 할머님의 사랑과 길원옥 할머님과의 만남은 평생 잊혀지지 않으며, 앞으로도 저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저는 할머님들 처럼 이역땅 일본에서 어떤 차별에도 굴할 줄 모르고 싸워나가는 떳떳한 조선사람으로 자라나겠습니다. 
 
할머님의 '희망'이 저의 가슴 속에 '홰불'이 된 것처럼 저도 할머님 그리고 우리 사회의 '희망'이고 '홰불'로 되고 싶습니다. 남을 위하고 자기 일로 여기시던 김복동 할머님의 정신을 따라 차별없고 평화로운 세상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배워나가겠습니다. 
 
김복동 장학생 황애향 드림 
 
■ 2020 여성인권.평화운동가 김복동 장학생 모집을 완료했습니다. 재일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의 많은 지원 고맙습니다.
 
■ 윤미향 전 공동대표가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 양징자 운영위원이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외손녀의 멋진 할머니가 되실 것입니다. 
 
'김복동' 후드티 판매!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2020년 세계 각지에서 여성인권, 평화 문제로 캠페인을 진행할 때 김복동 티셔츠 등을 입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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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세계 많은 사람들이 '김복동'티를 입고 “내가 김복동이다”는 목소리를 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판매수익금은 장학사업에 쓰입니다.
 
 

 
<김복동의 희망>을 후원하세요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의 '횃불'이 되어줄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김복동센터'를 건립하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시민사회활동가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재일동포 학생들에게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십시오.
 
여러분이 바로,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입니다.
 
■ 후원계좌 : 국민은행 069101-04-224446(예금주:김복동의희망)  
 
 CMS 후원신청으로 '희망'이 되어주세요.
 
 ※ 아래 [정기후원하기]를 클릭하시면 CMS 후원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4월 후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비영리민간단체 '김복동의 희망'
hope_bokdong@naver.com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11길 20
전화 02-3147-1116 / 010-9893-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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