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선생님에 관한 기억

[기자수필] 동원고 교사 인터뷰를 하고

수원시민신문 | 기사입력 2006/02/04 [13:11]

두 선생님에 관한 기억

[기자수필] 동원고 교사 인터뷰를 하고

수원시민신문 | 입력 : 2006/02/04 [13:11]

 
김찬수 교사와 [수원사람들]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를 하면서야 김찬수 교사가 동원고등학교 선생님인줄 알게 됐다. 기자는 동원고등학교 출신으로 김찬수 선생님 부임하기 한 해 전인 1992년도에 졸업을 했다. 1~2년 차이로 뜻밖의 감격의 상봉은 없었던 것이다.


김 선생님의 학생들과 일본역사탐방을 다녀왔다는 얘기에 비행기 한번 못 타본 본 기자, 일본 구경하고 온 동원고등학교 후배들이 부러워지기도 하며 인터뷰를 할수록 추억으로 빠져 들었다. 그가 학생들에게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추천한다고 하자 또 추억으로 빠져든다.


국사를 가르치던 여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국사교육의 의의는 선조의 삶을 이해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 정도일 듯싶으나 당시 국사교육은 오로지 학력교사 320점 만점 중 20점을 차지하는 한 과목으로 선조의 삶 중 출제가능성이 높은 사건과 제도를 암기시키고 암기하는 데 의의가 있었다.


‘태종태세문단세...’ 500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대통령을 순서대로 다 외우는 국민은 우리나라 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그 국사선생님은 조금은 달랐다.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고3이 끝나고 마지막 국사수업, 선생님께서는 역사책 한권 아니 정확히는 열권을 추천하셨다. 추천보다는 강권이었다. 꼭 정말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게 조정래의 ‘태백산맥’이었다.


그 국사선생님의 권유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기자는 어쨌든 나중에 두 번이나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했고, 당시 그 국사선생님이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달으며 괜스레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지구과학을 가르치던 여선생님이 또 한 분 계셨다.


고1 지구과학 마지막 수업, 으레 책걸이 겸 노래자랑 정도로 이어지는 노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노래를 요청하자 선생님께서는 두 곡의 노래를 부르셨다. 하나는 그냥 그런 노래였는데 다른 한 곡은 이상했다. 가사도 이상하고 더 이상한 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절절하게 눈물까지 흘리며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땐 참 별꼴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았다. 그게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란 걸. 그 노래를 부르던 때가 1989년이었다는 걸. 참교육을 부르짖던 수많은 교사들이 해직되어 거리로 내몰리던 그때. 학교에 남아 있던 그 선생님은 그렇게 눈물로 민주주의를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아 복받치던 존경심.


인터뷰가 끝나고 추억에 젖어 처음으로 동문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가물거리는 이름대신 과목으로 검색을 한다. 잘 안 뜬다. 전체를 부르고 하나하나 살펴본다.


찾았다. 장현애 국사선생님과 김선동 지구과학선생님이다. 두 분 다 현재는 안 계신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비폭력노선 안덕찬 선생님과 ‘포바이포’ 코만도 선생님 

검색을 계속하자 여전히 그 학교에 근무하시고 계시는 반가운 선생님들 또한 우수수 드러난다.
교감선생님이 되신 홍성덕 선생님, 류희영, 조성만, 우상운, 김형배, 지호준, 윤종택, 지형곤, 장유순, 안덕찬 선생님.


그리고 더욱더 반갑게도 담임이셨던 정강현, 송재일, 김기태 선생님들 또한 여전히 계시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반갑고 고마운 선생님들이지만 추억은 모두 사랑의 매로 이어진다. 지금이야 다 소중한 추억이고 매 맞던 그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학창시절이지만 과연 그 매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요즘은 사랑의 매가 없다니 다행이다.


선생님들 중 안덕찬 선생님을 제외하곤 모두다 기자에게 사랑의 매를 행사하신 고마우신(?) 분들이다. 안덕찬 선생님은 비폭력노선을 끝까지 지키셨을 거라 믿는다. 당시 나의 우상이었다.


모범생이 아니었던 탓에 매 맞던 기억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학창시절 맞은 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매는 아무개 선생님의 ‘포바이포’(가로세로 4인치 두께의 나무) 세례이다.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다 발각 된 적이 있다. 당시 아무개 선생님은 기자의 금연을 선도키 위해 ‘포바이포’ 각목으로 사랑을 행사하셨다. 일반인은 들기도 어려운 ‘포바이포’를 연장(?)으로 다룬 그 선생님의 별명은 ‘코만도’였다. 요즈음 그 선생님의 별명은 아마도 ‘몸짱’ 아닐까싶다. 흔히 사용되던 ‘마포자루’도 ‘야구방망이’도 아닌 ‘포바이포’는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당시 기자는 심하게 ‘쫄았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포바이포’ 그거 보는 것과 달리 하나도 안 아프다. 특히 고마운 것은 담임선생님에게 인계치 않고 사랑만 행사하고 끝냈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에게 인계됐다면 기자는 더 큰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장현애 선생님, 김선동 선생님, 안덕찬 선생님, 코만도 선생님 선생님들 모두가 오늘의 내가 있게 한 고마우신 분들이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동문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옛적 선생님들을 검색해보자. 가슴이 따뜻해지며 추억으로 젖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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