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자, 시민으로서의 생각
다카하시 기쿠에(高橋 喜久江) (매매춘문제와 맞서 싸우는 모임 일본기독교부인 교풍회)
다카하시 키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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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하시 기쿠에(高橋 喜久江)   © 수원시민신문
8월 제10회 일본군위안부문제아시아연대회의에 참가한 개인적인 소감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제1회부터 제10회까지 참가해온 저로서는 친한 분들 참석 못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이 늘어난 것을 보고 쓸쓸함과 희망이 엇갈렸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일본측이 책임을 다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부끄러움과 초조함을 갖고 귀국했습니다.

1988년 여름 방일한 이정옥 씨를 초청한 원내집회, 치바현 다테야마의 카니타 부인 마을(かにた婦人の村), 산꼭대기에 있는 ‘위안부’ 추모비를 안내하고, 1990년 말 모토오카 쇼지(本岡昭次) 의원 질문에의 정부답변의사록을 이정옥 씨에게 전달해준 것 등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저희들과 같은 해 발족한 한국정신대문제연락협의회의 활동은 서로가 연대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겸연쩍은 부분도 있습니다마는 적어도 부딪치지 않고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제2회, 제7회, 제9회 아시아연대회의를 일본에서 개최한 일, 2000년 12월 여성국제전범법정 개최로 활동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 쇼와일왕(昭和天皇) 유죄 선고 때의 소란, 피해여성들의 반응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후 NHK 재판 등의 움직임도 있었습니다만,)

전시성적강제피해자문제 해결촉진에 관계된 법률안은 8회 제출했습니다. 청원서서명운동을 반복해온 저희들은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뒤로 진전을 기대했습니다만, 국회제출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한 당내사정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주권자로서 화가 날 따름입니다. 다만 12월 14일 즈음에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정치가들은 뒷무대 앞무대의 활약도 있지만 ‘재일특권을 용납치 않는 시민회(재특회)’의 움직임을 산하에 두고 있습니다. 국회 앞에서의 시위, 집회에 대한 진압 등,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도 회의장 출입는 것을 방해하거나 역 플랫폼에서 조심하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경비경관들의 방관에 화가나, 경찰청 장관에게 항의서를 전달했습니다.

한국헌법재판소에 낸 할머니들의 청구권에 대한 위헌판단은 운동에 있어 진전입니다. 일본의 외무성은 변함없는 대응입니다만 바뀌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12월 14일 한국수요시위 1000차 연대행동을 외무성 포위로 결정한 것 역시 그 이유입니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국민의 ‘국민됨’의 나타냄이다’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말입니다. 일본의 정치는 우리 일본국민의 국민됨의 반영입니다. 저는 우리들은 하루살이주권자라고 자조하고 있습니다. 선거는 거의 일년에 한 번 정도밖에 하지 않습니다. 진작부터 일본사회는 관존민비 남존여비(官尊民卑男尊女卑)사회였습니다, 아래로부터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만, 어쨌든 주장하는 입장은 주권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문제로 일본정부, 일본사회의 대응은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할머니의 부고가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저밉니다. 또한 같은 여성의 압장으로서 성차별, 성착취의 상황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사회의 시민, 또 주권자로서 국제연대 속에서 전진하는 것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정대협21돌을 맞은 2011년 12월에 발행된 <정대협신문 21>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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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13 [17:06]  최종편집: ⓒ 수원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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