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 "퇴직하고서도 봉사하고 싶어요"

[인터뷰] 제1회 홍재공직대상 수상자, 수원시청 복지여성국 김서영 주무관

송병형 기자 | 기사입력 2012/12/27 [18:32]

김서영 "퇴직하고서도 봉사하고 싶어요"

[인터뷰] 제1회 홍재공직대상 수상자, 수원시청 복지여성국 김서영 주무관

송병형 기자 | 입력 : 2012/12/27 [18:32]

▲  제1회 홍재공직대상 수상자, 수원시 복지여성국 김서영 주무관  © 수원시민신문

"나중에 퇴직하고서도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가지고 어려운 이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습니다."
 
21년간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유독 일 많은 곳만 맡아 고생한 것 같다는 수원시 복지여성국 사회복지과 김서영(여, 52) 주무관. 김 주무관은 그러면서도 퇴직 후에도 봉사의 삶을 계속하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91년 매탄3동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김 주무관은 IMF사태 당시 혼자서 4-5백건의 퇴직자 보호 업무를 처리하기도 했고, 팔달구청 근무시절에는 다들 기피하는 수원역 노숙인들을 맡아 동분서주하기도 했다.
 
오랜 근무기간 중에는, 돌보던 장애인이 쓸쓸히 세상을 뜨자 겨우 연고인을 찾아 유골을 고향으로 안치시킨 힘든 기억도 있고, 생명의 은인이라는 감사의 말에 보람을 느낀 때도 있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현재 김 주무관은 사회복지과에서 노숙인업무 등을 맡고 있다. 그는 노숙인업무를 맡고 있는 경기도 유일의 여성공무원이다.
 
김 주무관은 최근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1회 홍재공직대상을 수상했다.
 
상을 제정한 홍재언론인협회의 회원사인 <수원시민신문>은 27일 그의 공직생활 20여년의 이야기를 얼마간이나마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수원시청에서 가진 그와의 인터뷰를 간추린 것이다.
 
- 21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그간의 공직생활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결혼하고 아이들 셋을 낳고나서 서른이 넘어서 늦게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사회복지일을 생각하고 공무원이 됐습니다.
 
91년 매탄3동사무소에서 업무를 처음 시작했어요. 제가 일하던 그때 신동과 망포동이 매탄3동에 편입되면서 사회복지업무 비중이 굉장히 늘어났어요.
 
게다가 97년 IMF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혼자서 4-5백건을 처리하느라 굉장히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당시에 한시적 사업이라고 해서 동별로 배정량을 할당하면 다 채워야 했거든요. 회사에서 퇴직하신 분들은 무조건 한시적으로 보호를 하는 거에요. 그때 사회업무부서가 가장 업무량이 많은 부서였어요.
 
매탄3동과 매탄1동을 거치고 나서 팔달구청으로 갔습니다. 전체적으로 각 동의 업무를 취합해서 맡게 됐는데 아시다시피 그곳에 서민아파트단지가 있잖아요. 저는 일을 많은 부서를 많이 다닌 거 같아요.
 
2005년도에는 주사보가 돼서 인계동사무소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곳도 제일 힘든 동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2007년 9월에 노인장애인과가 생기면서 발탁돼 시청으로 왔는데 그때 노인바우처, 장애인바우처 업무가 신설됐어요. 초기다보니 사업량은 적은데 실적은 요구하니까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있는 사회복지과는 2009년도에 왔습니다.
 
- 이번에 홍재공직대상을 수상하셨는데, 수상내역에 노숙인쉼터 이야기가  있던데요?
 
팔달구에 수원역이 있잖아요. 팔달구청에서 처음 노숙인 업무를 맡게 됐어요. 그 인연이 지금까지 닿게 된 거에요.
 
당시에 제가 발령을 받아서 출근했는데 업무 첫날에 중앙병원에서 행려병자가 사망했다고 연락이 온 거에요.
 
첫날이라 업무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해서 전임자 폴더를 봤지요. 염하는 거부터 해서 제가 장례절차를 밟아서 해야 하는데, 사진을 보니까 시신 염하는 것도 나오고, 지문도 찍어야 하는 거에요.
 
중앙병원에 가서 지문을 찍지를 못해서 옆에 남자선생님이 해 주시고, 처음 하다보니까 과연 행려자 업무를 여자가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수원역에서 굉장히 많은 노숙인들이 발생하잖아요? 팔달구청에는 노숙인 보호대기실이 남자방과 여자방이 따로 있어서 경찰서에서 모시고 오는 분들을 다 보호방에 유치를 시켰어요.
 
그때는 카메라(CCTV)가 없어서 노숙인 담당자가 수시로 내려와서 확인을 해야 하던 그런 시절이었어요.
 
한번은 매산동 고시원에서 큰 불이 난 적이 있어요. 2004년도였을 거에요. 불이 나서 15명 정도가 갈 데가 없어서 보호대기실에 수용을 했어요.
 
그분들이 노숙인 보호방에 오다보니까 적십자사에 구호품 요청하고 하는 일을 제가 다 하게 됐는데,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온 거에요.
 
제가 당황해서 있는 그대로 보여드렸는데, 그분들이 "노숙인 방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냐" "정리가 너무 잘 돼 있다" 그러시더라구요. 그게 기억이 나네요.
 
- 어려운 일을 해오셨는데, 가장 힘들었던 일을 꼽으신다면요?
 
매탄3동에서 근무할 때, 독거노인은 아니고 젊은 장애인인데 폐암 중증환자로 혼자 사시던 분이 있었어요.
 
폐암말기라 아침마다 복수가 차서 제가 병원도 모셔가고, 아침에 만나면 저한테 "김선생님, 커피 한 잔 주세요" 이러던 분인데 계속 안보이는 거에요.
 
제 업무가 워낙 많던 때라서 '어디 가셨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겨울 어느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 있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전화를 한 거에요. 빨리 와 보래요, 아저씨가 이상하다고.
 
가보니 그분이 누워 있는데 만져보니 일부만 온기가 있는 그런 상태에요. 방 여기저기에는 대소변을 봐 놓고요. 2-3일간 발병해 누워 있는데 늦게서야 발견한 거에요.
 
어떡해요, 부녀회장이랑 주인집 아주머니랑 함께 목욕시키고 옷도 다 갈아입혀서 119로 동수원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보호자 나오라길래 제가 나갔죠.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길텐데 다음날 전화해주겠다, 그런데 가망은 없다"고 하더라구요.
 
돌아가시면 장례도 제가 다 해드려야 하고, 누구 한 명이라도 연고자를 찾아서 유골을 고향으로 보내야 하잖아요. 젊은 나이에 어떻게 장례를 치어야할지 고민했는데, 다행히 6촌정도 되는 형님이 있었어요. 그 동네 이장님을 통해서 어떻게 연락을 해서 돌아가시기 전이라고 말씀드렸어요.

다음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운명하셨습니다." 제가 다 화장을 해서 유골함을 그 형님에게 맡겨 고향으로 내려가시게 했어요.
 
그때 얼마나 힘들었던지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저희 아저씨가 그때 저한테 "당신은 죽을 병에 걸려도 죽지 않을 거"래요. 좋은 일을 많이 해서요.
 
- 보람을 느끼신 일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올해 6월중순정도에 제가 전화제보를 받고 팔달산 관광안내소로 갔더니 중국동포분이 누워 있는 거에요. 배가 이만큼 찬 상태로요.
 
급히 119로 의료원으로 보내드렸는데 2개월이 지나서 저를 찾아오셔서 "삶의 은인"이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지금 지난 11월부터 내년 3월 15일까지 노숙인 동절기 보호대책을 해요. 시민단체들하고 공무원들이 해가지고 밤 10시에 역에 나갑니다.
 
나가보면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여요. 제가 얼굴을 다 아니까요. 가서 앉아서 그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눠요. "추운데 있지 말고 꿈터로 가시자"고요.
 
요새는 기자분들도 수원시가 잘하나 서서 지켜보시고 하는데, 제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주위분들이 "저사람 교회에서 전도나왔나" 그런 오해도 하시더라구요.
 
작년에 꿈터를 잘 지어 놨어요. 제가 경기도에 이야기해서 도예산을 받고 해서 지은 거에요. 예전에는 수원역에 노숙인들이 쭉 늘어져 있는 모습이 언론에 나오면 그렇게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꿈터같은 게 잘 운영이 되고 있어요.
 
이제 수원시 노숙인업무 처리가 쉼터에 와서 자립하고 나갈 수 있게 시스템이 잘 마련이 됐어요. 몇 년동안 노력해서 꿈터도 만들고 체계적으로 시스템도 마련하고 해서 보람을 느낍니다.
 
저로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제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있습니다. 노숙인업무는 기피업무라서 누구든지 보기 싫어하는 업무거든요.
 
더구나 경기도에서 노숙인업무를 보는 여자공무원은 저 하나에요. 다행히 제가 나이도 있고 연배도 있어서 노숙인분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도 나누고 그래요.
 
- 공직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좌우명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면요?
 
저는 공무원을 늦게 시작한 사람이에요. 사회복지업무를 하고 싶어서 하고 있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열명 중 한명이라도 자립하게 도와줄 수 있다면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근무를 하는 거에요. 승진에 연연할 생각은 없어요.
 
제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고, 성격 자체가 상담하고 이런 것을 좋아해요. 저한테 잘 맞는 업무에요. 퇴직해서도 '노인복지시설 운영을 해볼까, 아니면 자격증이 있으니 성폭력상담을 해 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사회복지업무를 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상담하는 것처럼 했는데, 커가면서 그런 이미지가 아이들에게는 참 좋았나봐요. 딸 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둘째가 사회복지, 특히 청소년복지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나와서 공직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이번에 상을 받았는데 남편이 저한테 "더 열심히 하는 상이야"하면서 더 열심히 하래요. 남편도 수원시청에 근무해요. 아이들도 "엄마가 대견스럽다"면서 좋아하구요.
 
- 이제 마쳐야할 시간입니다. 마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제가 사회복지공무원을 퇴임하는 날까지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구요. 나중에 퇴직하고서도 헌신적인 봉사정신을 가지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싶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PHOTO
1/20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